top of page

눈을 떴을때는 나밖에 없는 공간이었다.

 

하얗고 아무것도 없는, 적막한 무의 공간.

 

나는. 죽은 것인가.

 

아니. 그 말은 맞지않다. 나는 이미 죽었다는 것이 맞는 말이겠지.

 

나는 죽었다. 그것도 여러 번.

 

그러나 그것은 나의 뇌리에 남아있지 않다.

 

내 머리 속의 기억은 계속 퇴색되고 회색으로 칠해져서 계속해서 바스러졌다.

 

결국에는 나도 나를 기억 못하게 될 정도로.

 

곁에 누군가 있었다는 것조차 내겐 희미했다.

 

오르골을 넘겨준 어머니라는 이름의 그녀까지.

 

헌신적. 내가 그녀에게 붙여줄 수 있던 수식어였다.

 

그녀의 헌신적인 애정으로서 나는 다시 살아났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아닌 '다이도 카츠미'의 것이었다.

 

죽어버린 인간의 마음을 가진 '다이도 카츠미'의.

 

나에게는 현재의 순간만이 남았을 뿐이었다.

 

그 현재의 순간에 남은 채 다시 돌아보니 나에게 남은 것은 손에 든 하모니카와 잔인한 생체병기라는 명칭뿐이었다.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닌 시체의 모습으로서 움직이는 병기. 그것이 나였다.

 

깨어날 때마다 등 뒤로 닿는 차가움이 나를 반기는.

 

나는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동료를 모았다.

 

나와 같은 죽음을 기억하는 이들을.

 

과거의 아름다운 추억을 찾는 어머니는 그것마저 나를 도와주었다.

 

헌신적. 그 얼마나 아름다운 단어인가.

 

이렇게 베푸는 것만으로 일방통행적인 관계가 완성되어 버리는 '아름다운'단어.내게는 와 닿지 않는 그 단어가,

 

내가 알지 못하는 나와 어머니란 여자의 관계를 완성시켰고 그 관계는 당연히 불안정한 관계일 수 밖에 없었다.

 

내 자신을 잃어버린 나에게는 미래란 존재하지 않는다.

 

어떠한 미래가 내게 닥칠지 '다이도 카츠미'또한 몰랐겠지만.

 

모르는 것과 없는 것은 다르다.

 

기회조차 존재하지 않는 자와 기회가 존재하는 자.

 

난 현재에서 빙글빙글 도는 회전목마와 같은 모습 이었을 뿐이다.

 

앞으로 더 이상 나가지 못하는.

 

지금의 상황처럼 말이다.

 

문이라도 있다면. 앞으로 전진 할 수 있을텐데.

 

문.....?

 

방금 전까지도 아무것도 없던 곳 에 문이 생겨나있었다.

 

이곳으로 나가란 것인가?

 

마치 천국문을 보는 느낌이다.

 

천국문이라니. 그런 게 본인에게 있을거라고 생각하는건지.

 

고개를 저으며 문을 열었다.

 

익숙한 리듬. 머릿속으로 익숙한 리듬이 떠다니기 시작한다.

 

이건 과거의 나의 기억인가.

 

제 3자로서 존재하는 게 이해되진 않지만 죽음 앞에서 뭐가 이상할 리가 없다.

 

어머니를 이렇게 관찰하고 있는 것은 처음이다.

 

내가 아직 '다이도 카츠미'였을 때의 어머니의 얼굴.  '프로페서 마리아'가 아닌 그녀의 얼굴.

 

그녀의 행복한 얼굴이 너무나 낮설다.

 

그리고 내가 죽는 장면에서는 너무나도 익숙한 얼굴이 나왔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어머니는, 그녀는 그 이후 어딘가 죽어있었던 게 아닌가 하고.

 

그 이후 존재는 하지만 자신이란 존재를 포기하고 현실을 받아들여 현실에서 살게 된 게 아닌가하는.

 

나는 그녀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렇게 되지 않아야겠다고 은연중 생각하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과거도 현재도 아닌 미래를 보려고 항상 노력했던 걸지도.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나는 멈출 순 없었을 것이다.

 

나는 현재가 과거가 되어버리는 순간 나를 잃어버리고 있었으니까.

 

미래를 향하지 않았다면 나는 이미 존재하지 않았을 거다.

 

존재한다는 흔적을 남기지 않으면 누구도 내가 존재한다고 알아주지 않듯이.

 

그래서 난 후토를 선택했다. 내 '흔적'을 남기기 위해.

 

내가 살아있다는 외침을 전하기 위해.

 

그리고 난 그곳에서 그를 만났다.

 

필립. 소노자키 라이토.

 

나는 그를 형제라고 생각했다.

 

그도 나와 같이 재단과 소노자키가라는 실에 얽혀있는 인물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달랐다.

 

내가 가지고 있지 못한 '미래'를 가지고 있었다.

 

또한 미래를 힘들게 나아가지 않아도 괜찮다는 그런 '믿음'도.

 

그래서 그를 계획에 추가했다.

 

어머니를 이용해 그를 끌어들이는 것은 쉬웠다.

 

내게서 아들로서의 정을 느끼고 있던 어머니가 어머니의 감정을 찾는 그를 계획에 끌어들이는 것.

 

헌신적인 어머니였던 그녀는 내 계획을 들어주었다.

 

어머니가 반대했더라도 계획을 밀고나갔을지도 모르지만 그녀는 나의 계획을 반대하지 않았고 내 손을 잡았다.

 

어머니란 존재는 때로 잔인하다.

 

자기 아이에 관해서라면 다른 아이가 상처받더라도 멈추지 않는다.

 

헌신적이면서도 잔인하다.

 

나는 그녀를 더 이상 사랑하지 못하게 되어버렸지만 그녀는 나를 사랑하고 있다.

 

일방통행적인 감정은 나를 지치게 했을 뿐 나를 바꾸진 못했다.

 

이 세계 안에 혼자 멈추어버린 느낌.

 

문득 주위를 둘러 보았을 때 아무도 남지 않은 외로운 미아가 되어버린 느낌에 난 나와 같은 이들을 만들었다.

 

그들은 나로 인해 구원받았다고 느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다르다.

 

나는 그들을 언제든지 처단할 수 있는 처단자다.

 

그들의 희망을 언제든지 없앨 수 있는 거짓된 구원.

 

내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 없다면 처단해버리는 것이 낫지 않나?

 

가슴이 이상하게 욱신거리는 느낌이다.

 

이제는 인간의 감정 따위 모르는 몸이 된 건지 알았는데.

 

죄책감 이라는 것인가. 이 따끔거리는 감정이.

 

구원은 내게서 오지 않는다. 그것은 모두 그들의 생각일 뿐. 그렇게 믿는 것뿐이다.

 

[카츠미.]

 

문득 나를 부른 듯한 느낌이 들어 뒤로 돌자 그곳에는 또 다른 문이 자리했다.

 

이 안에는 또 무엇이 있을 것인가.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앞은 모두 어둠이었다. 조심스레 발을 뻗어 걷기 시작했다.

 

그러다 무언가 밟히는 느낌에 밑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갑작스레 밝아지는 시야와 함께 보게된 것은 미나를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의 광경이었다.

 

나는 그 안에 홀로 서있었다.

 

내가 밟았던 것은 그중 하나의 옷자락이었고 나는 계속 앞으로 걸어 나갔다.

 

내 미래로 인해 갈려버린 운명들.

 

마지막으로 보인 미나의 하얀손 안에 잡혀있는 하모니카는 아직 따듯했다.

 

그녀가 내게 남긴 마지막 온기.

 

그녀의 손에 든 하모니카를 잠시 손에 쥐었다 다시 그녀에게 쥐어주었다.

 

나는 온기를 그녀에게 남길 수 없고 지금 떠나가게 되지만 그녀의 온기는 내게로 전해졌다.

 

나는 미래로 나아갈 수밖에 없어.

 

더 이상 과거에 존재해서는 안돼.

 

나는. 그 이후 멈춰버린 채이니까 앞으로 가지 않으면 안된다.

 

이처럼 잔혹한 미래들이 기다리더라도.

 

나는 더 이상 뒤돌아보지 않아.

 

내게는 영원한 안식이 없을 테니까.

 

또다시 내 앞에 나타난 문에 어쩐지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럴 리가. 죽었음에도 영혼이 옭아매어져 있는 내가 그럴 리가.

 

문을 열었다.

 

[카츠미.]

 

어머니?

 

첫 번째 문안에서 슬퍼하고 있던 어머니가 여기에 있다니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녀를 부르기 위해 목소리를 내보다 놀랐다.

 

이것은 '그때의'.

 

[카츠미.]

 

언제고 보았던 어머니의 편안한 미소.

 

나 기억하고 있었던 건가?  어머니의 미소란 것.

 

[카츠미.]

 

그녀가 내게 팔을 벌렸다.

 

[어머니]

 

나는 그녀의 품 안으로 뛰어들었다.

 

[네가 있어서 행복하단다 카츠미.]

 

행복...

 

떠올랐다. 잊어버리고 있었지만 몸은 기억하는 '누군가에 대한 애정'과 '사랑'에 대해서.

 

[행복해지자 카츠미-]

 

눈이 감겨 오기 시작했다.

 

이 품안에서라면 잠들어도 괜찮다.

 

안심해도 괜찮다.

 

언제고 나를 사랑해줄 '어머니의 품'이라면.

 

나는 잠이 들었다.

 

더 이상 내 의지 없이 이어지지 않는 편안하고 아름다운 꿈들을 꾸기 위해.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