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大丈夫」って話してあげたいな (「괜찮아」라고 말해주고 싶어)

0.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소년이 있었던 그 세계엔 많은 이들이 소년의 곁에 있었으나,

결국 그들은 모두 소년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혼자가 된 소년은 너무나 외롭고 슬퍼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하루,

이틀,

사흘,

나흘,

이레,

여드레,

아흐레,

긴 시간동안 소년은 눈물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러는 동안 소년의 세계는 눈물로 차오르기 시작했고,

이내 작은 바다가 되었습니다.

그 작은 바다에, 어느 날, 새빨간 비늘을 가진 금붕어가 나타났습니다.

소년과 금붕어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1.

왜 이럴 수밖에 없을까,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언젠가의 날에는 그것에 대해 생각했던 시간들이 있었다. 지금? 지금은 어떠냐고? 관두었다. 그런 것에 관심을 두어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어린 소년은 아직 남은 길이 많은 생에서. 너무나도 일찍. 깨달아버렸다.

한 바퀴 둘러본 시선. 습한 공기가 가득한 실내는 부산스럽다.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부터 시작해서, 몇몇 낯익은 얼굴들까지. 소년은 오늘 낮까지의 일을 기억하고 있다. 아마 그 옆에 있는 제 누이도 그 일들을 기억하고 있으리라. 하고 싶지 않아도 할 수밖에 없는 것. 기대하던 것들이 처참하게 깨어지던 순간.

소년의 아버지는, 소년이 그보다 더 어렸던 시절. 저 자신이 태어나길 원하지도 않았음에도 태어나, 세상에 제가 있음을 기억하지 못하던 때. 가족을 버리고 자신의 길을 택해 떠나버렸다. 지금의 성씨도 어머니로부터 받은 것. 그래, 가족. 가족은 이미 한 차례 붕괴의 위기를 겪었다. 상실. 그 의미를 깨닫기도 전에 한 차례, 그 생에서 겪어야 했던 것. 소년은 그리하여, 이 이상의 상실은 없을 것이라고 믿었다. 세상의 전부는 그것이었다.

어린 남매를 돌보기 위해 소년과 소녀의 어머니는 최선을 다했다. 그것으로도 충분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남매가 할 수 있는 일은, 느즈막히 들어오는 어머니를 기다리는 일이었다. 늦은 저녁. 현관문 앞에 쪼그려 앉아 있다가,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면 맨발로 뛰어나가 어머니를 마중하는 일. 남매가 하루 일과를 마무리하기 위한 정리.

왜.

 

「키리코. 고우.」

 

왜 그 하루는 영원히 계속될 것만 같았던 걸까.

 

「너희 어머니께서…….」

 

일과를 마무리해줄 수 있는, 누군가의 미소가 없었기 때문이겠지. 그것을 영영 보지 못할 것을 알았기 때문이겠지.

다시 겪을 일이 없을 줄 알았던 상실은 너무나도 빨리 남매를 덮쳤다. 열린 현관문 틈. 쏟아지던 장대비에 맨발이 순식간에 젖었던 만큼이나. 아버지도. 어머니도. 상실. 상실. 상실의 연속. 소년은 옆에 앉은 누이의 손을 꼭 잡는다. 이제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안 된다. 소년은 누이를 지켜야 했다. 남은 유일한 혈육. 유일한 가족.

 

“누나.”

“고우. 나, 결정했어.”

 

눅눅한 공기 속 그 시끄러운 와중에도, 아직 눈물기가 걷히지 않은 누이의 목소리는 선명하게 들렸던 건. 왜일까. 무엇을 직감했던 탓이야? 다시 과거로 돌아가 물어본다고 해도 알 수는 없으리라.

 

“경찰이…… 될 거야.”

“……그렇구나.”

“엄마한테 자랑스러운 딸이 될 수 있는, 멋진 경찰이 될 거야.”

 

누이는 아직 붉은 눈시울을 휘며 웃었다. 소년은. 소년은 아직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했다. 상실이 무엇인지 알기도 전에 겪은 첫 번째 상실. 이제 갓 상실의 의미를 알자마자, 준비하기도 전에 덮쳐온 두 번째 상실. 그리고 이제.

소년은 누이의 발목을 잡고 싶지 않았다. 자신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누이가 몰랐으면 했다. 그래. 누이도 힘들다. 철부지 동생을 위해서라도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고 있겠지. 그런 누이의 짐이 될 수는 없었다. 소년은, 소년은 적어도, 상실보다 그것이 더 큰 아픔이라고 생각했다.

 

“그럼 난…… 미국에서 공부하고 싶어. 미국에 갈래.”

 

세 번째 상실은, 소년이 스스로 선택한 상실이었다.

 

 

 

 

2.

제법 자랐다. 소년은 이제 어른에 가까워졌다. 가까워졌다, 고 생각하고 싶은 건 어느 쪽이었을까. 소년 자신? 그것이 아니면 소년 주변의 사람들? 그것도 아니라면 세계가? 모르겠다. 어쩌면, 아직은 어른이 되지 못한 건지도. 마음은 아직도 어린 날의 세계를 유영하며 그곳에 머무르는데, 몸만이. 몸만이 현실을 받아들여 커져간다. 마음은 그 옛날의 빛바랜 추억과 고통 속에 잠들어있건만.

어린 날의 상실은 사실 거기서 끝이었던 게 아니라, 계속. 계속. 멈추지 않고 지금까지로 흘러온 건 아닐까.

눈앞에는 무수하게 많은 사진들이 흩어져있다. 수많은 풍경과. 수많은 기억과. 수많은 목소리들. 그 모든 게 이런 종잇조각 하나에 담길 수 있다는 건 멋진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왜 지금 보는 그것들은 하나도 멋지지 않은 건지.

이산. 그는 좋은 친구였다. 멋진 파트너였고, 자신의 너그러운 지지자였다. 느긋하게 웃는 모습이 눈동자 위로 스쳐지나간다. 멋진 은하수를 찍을 수 있을 거라고. 꼭 함께 멋진 사진을 찍어보자고. 그는 그렇게 말했다. 그게, 그게, 예상치 못한 상황을 초래할 줄은 누가 알았을까. 신은 알았을까. 아니, 신을 부르짖을 필요도 없다. 이산과 함께 그 장소에 갔더라면 무언가 달라졌을 거라고. 소년은 생각하고 있다. 죽음의 앞을 조금은 빗겨갈 수 있었을 터다. 서로 마주보고 웃으면서. 카메라 앵글 안에, 사각의 종이 안에, 아름다운 별하늘을 담을 수 있었겠지.

사각의 종이 안에 담긴 추억들은 이제 미래의 발판이 될 수 없다. 딱 거기까지. 그곳. 그 자리. 이제 한 개의 시간 속에서만 영원히 갇히게 될. 미래가 되지 못하고 과거의 한 흔적으로, 가슴 속 어떤 흉터로만 자리 잡게 될 그것들. 사진 속의 웃음은 이제 미래가 될 수 없다. 며칠 후에도, 몇 년 후에도, 아마 앞으로도 영원히.

짧은 소나기가, 사각의 추억 위로 쏟아졌다. 이 비가 멎더라도 가슴 속에서는 쉬이 그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속이 쓰리다. 몇 번을 들여다보고, 몇 번을 쓸어보고, 몇 번을 들었다 내려놓았다 한 끝에. 소년은 도망치듯이. 그 종잇조각들을 한꺼번에 상자 안으로 쓸어 담았다. 푹, 상자 뚜껑 너머의 어둠 속에 잠든 그것들은. 언젠가는 다시 꺼내보아야 할 것들이겠지만, 적어도. 적어도 그때가 지금은 아니었다. 그래. 지금은 아니었다. 추억을 추억답게 간직할 수 있는 순간은, 혼자만 살아남은 자신에 대한 속죄가 끝난 후. 이산의 복수가 끝난 뒤다.

「소년」은 그렇게 네 번째 상실을 겪었다.

 

 

 

 

3.

『당신은 나를 떠나지 않을 거죠?』

 

소년의 물음.

 

『그럼. 나는 너를 떠나지 않아. 네가 계속 슬퍼해준다면.』

 

금붕어의 대답.

 

『하지만 난 이제 슬프지 않은 걸요. 당신이 있으니까.』

『하지만 네가 슬퍼하지 않으면 이 바다는 존재할 수 없어. 그럼 난 널 떠나야하겠지.』

 

 

 

 

4.

왜 이렇게밖에 될 수 없는 걸까?

왜 이것 말고는 다른 결말이 나올 수가 없는 거야?

이제는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죽을 만큼 노력해서 이산의 복수를 이뤘다. 그래. 그거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지. 그것은 안일한 착각. 너무나도 쉽고 가벼운 자기위안. 더 큰 고통과 죄악은 가까이에 있었고, 누군가 알아차리기 전에 죄악을 없애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그걸 위해 노력한 건데 왜. 왜. 왜. 왜 모두가 알아버린 걸까? 왜 모두를 휘말리게 만들어버린 걸까?

왜.

왜.

왜.

후회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걸까.

 

“인간이 내게 준 보물이다……. 네가 가지고 있어다오.”

 

어떤 말도 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다. 괜히 죽을 것 같은 말 하지 말란 말야. 영화에서, 꼭 살아 돌아오겠다던 주인공이 결국 고향으로 되돌아오지 못하는 것처럼. 마치 이별을 고하는 것 같아서. 그 말을 듣고 싶지 않았어. 네 입을 다물게 만들고 싶었는데. 떨리고 있는 것은 제 손. 소리가 나지 않는 것은 제 목소리.

 

“불타버리면 아까우니까….”

 

검은 눈동자에 비친 건 울먹이고 있는 제 얼굴. 자신과 다르게, 저를 비춘 눈빛은 너무나도 평온했다. 이제 다 괜찮다고 다독이듯. 너를 고통스럽게 하던 그 모든 것을 없애주겠다는 듯.

아냐. 너는 할 수 없어. 자신도 그것을 모르지 않는다. 알고 있다. 다 알고 있어. 그런데도 넌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너 따위가 내 고통을 없애줄 수 있을 리 없다고, 다 떠안고 죽을 생각일랑 하지 말라고는 말할 수가 없다. 왜일까. 왜일까. 그 순간에도 망설임이 있었기 때문인가.

싫은 녀석, 이라고 생각했다. 싫지 않을 리가 없었다. 저것은 죄악. 죄악이 만들어낸 또 다른 죄악. 이산을 죽게 만들고 많은 사람들을 희생시킨 죄악에 속해있는 것. 싫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죄악」과는 다르다고 정의하는 순간 끝이다. 지금까지 자신이 살아온 이유가 무너진다. 그런 이유였는데. 왜 지금은, 그 투명한 눈을 보고 있자니, 이렇게까지, 이렇게까지, 한 번쯤 긍정해도 좋았을 거라고, 생각하게 되는 건지.

미적지근한 온도가 손에 닿는다. 상처투성이로 떨리는 손이, 떨리는 손에 쥐어준 것은 시그널 체이스와 특별 면허증. 아주 자그마한 것들. 이미 여기저기 긁히고 그을린 그것들. 까만 얼룩 너머의 웃는 얼굴을 바라보기 고통스럽다. 손에 힘이 풀리려는 것을, 쥐어준 손이 그것들을 끝까지 감아쥐게 한다. 닿아버린, 온기라고 말할 수도 없었던 온기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그거 알아? 넌 내 짐이었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안다는 듯. 눈동자는 저를 빤히 보고 있다.

그건 알아? 난 널 인정하는 게 두려웠어.

그것도 다 안다는 듯이, 깜박깜박, 가려진 눈꺼풀 너머의 눈동자는 단 한 번의 흔들림도 없다. 다 알고 있다. 소리가 되지 못한 언어가 가슴에 콱 꽂혀버린 것만 같다.

그럼 이것도 알아? 지금 내가 얼마나 후회하고 있는지.

 

「괜찮다. 넌 후회하지 않아도 돼.」

 

마지막으로 본 눈은 분명 그렇게 말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착각일지도 모르지. 용서받고 싶다는. 이제 와서 용서를 빌어봤자 용서받을 수 있을 리 없단 걸 스스로가 알고 있어서.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은 편할 테니까, 생각하고 싶은 대로 그 눈빛에 담긴 의미를 결정해버린 것에 가까울 수도 있다. 그런데도, 생각한 의미대로일 거라고 믿고 싶은 건. 녀석이라면. 녀석이라면 자신은 상관없다고, 누나가 사랑하는 누군가를 지켰으니 그걸로 된 거라고. 그렇게 말할 녀석이니까. 아니. 그렇게 말한 녀석이니까.

미,

달라붙어 떨어질 줄 모르던 입술이 드디어 떨어졌는데. 이제야 말을 할 수 있게 됐는데. 적어도 그건 들어줄 수 있잖아. 왜 다 안다고, 굳이 말로 할 필요 없단 표정을 짓는 거야.

안,

소리 내서 말할 기회 정도는 달라고. 마음만이, 끓어올라 죽을 것만 같은 가슴만이 쉼 없이 외치고 있다. 아냐. 이건 아냐. 그 「보물」만을 움켜쥔 채로. 「소년」은 눈앞의 「죄악」을, 이제는 「친구」라고 부르고 싶은 그를 보고 있다.

내가 널 그렇게 미워했잖아. 사실, 인간이 너에게 해준 건 없는 거나 마찬가지잖아. 동료란 그 시답잖은 이름 하나로 널 이용해왔던 건지도 모른다고. 거기에 네가 집착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멍청아. 왜 끝까지 그것들조차도 보물이라고 말하는 거야. 왜, 왜, 나사 빠진 기계주제에, 왜 이렇게, 왜.

해,

그러니까 제발.

어째서일까. 간절한 염원은 그 누구에게도 닿지 않는다. 「상실」은 계속되어왔다. 가지 말라고 속으로는 끊임없이 외쳤지만. 제발 내 곁을 떠나지 말아달라 그렇게도 목이 터져라 외쳤건만. 그 어떤 말도 소리가 되지는 못했다. 그렇게 모두가 떠났다.

너도 날 떠날 거야?

가슴이 만들어낸 질문에 돌아오는 소리는 없었다. 다만 갑작스럽게 굳어진 표정이. 저를 밀어내던 상처투성이 손이. 모든 대답을 만들어낸다. 소리 한 번 내지 않았는데, 그것은, 갑작스럽게 소리가 되어. 너무나도 간단히 심장을 꿰뚫어버렸다.

그것으로 널 지킬 수 있다면.

 

 

 

 

5.

 

 

 

 

마법에라도 걸린 걸까. 모든 시계(視界)가 느릿하게 움직이고 있다. 지금 움직이면 뛰어가는 저 뒷모습을 잡을 수 있을지도 몰라. 저 너머, 금색의 죄악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그 발을, 손을, 붙잡을 수 있다면. 무슨 짓이라도 할 텐데. 부탁이야. 누구라도 좋으니까, 이 마법을 풀어줘. 제발.

아무리 염원해도 제 발은 움직이지 않는다. 느려진 것은 세상만이 아니라,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잡을 수 없다. 이미 거리가 너무 벌어졌다. 안 돼. 안 돼. 또 이럴 순 없어. 부탁이야. 너까지,

 

“체이스!”

 

날 버리고 가지 마.

눈을 멀게 할 정도의 불꽃이 보이는 세상을 모두 뒤덮고. 보랏빛으로 반짝이던, 「000」의 코어가 보였을 때. 그때 그건 뭐였을까. 너도 사실은, 죽고 싶지 않았던 거지? 소년은 계속해서 생각한다. 너도 사실은, 인간과 함께 살아가고 싶었던 거지? 울먹이는 시야 안으로 마치 눈물을 흘리는 것 같았던 그 코어는, 작은 폭발과 함께. 세상과, 그 「친구」와 작별을 고했다.

그것이 그 「소년」의 다섯 번째 상실.

 

 

 

 

6.

소년은 금붕어가 있었기에 슬프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금붕어가 자신을 떠날 것은 두려웠습니다.

계속 여기 있어주세요. 내 친구로 남아주세요.

소년은 자신의 팔에 상처를 내어,

얕고도 깊은 바다에 몸을 묻었습니다.

 

 

 

 

7.

복수하겠어. 복수할 거야. 네 복수를 하겠어. 널 죽인 저 인간, 인간이라고도 부를 수 없는 저 「죄악」을 용서하지 않겠어. 나와 함께 싸워줘. 그리고,

 

“안 된다, 고우! 나의 뛰어난 두뇌를 이 세상에서 없애려고 해선 안 돼!”

 

무슨 헛소릴 하는 거야. 픽,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지 않고 소년은 그대로 입 밖으로 흘렸다. 그 뛰어난 두뇌라는 것 때문에 몇 명의 사람이 고통 받았는지, 오로지 자신만을 위하려 했던 그 머저리 같은 생각 때문에 몇 명이 희생되었는지. 저것은 저세상에 가서도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 그런 거였지. 저런 걸 그래도 아버지라고, 한 번이라도 믿어보려 했던 게 잘못이었다. 죄악은 죄악일 뿐이었어.

지친 팔에는 힘도 들어가지 않는다. 어찌저찌 질질 끌고 간 신호 엑스에서는, 마침 타이밍 좋게도 「가도 돼요!」라는. 이 거무죽죽한 상황을 배반하는 듯 유쾌한 소리가 들려온다.

 

“가도 된다는데……?”

 

뒷말은 들을 가치도 없다고. 소년은 그대로 그 커다란 무기를 들어올렸다. 풀 스로틀! 끝까지 상황에는 어울리지도 않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아버지, 라 부르고 싶었던 인격이 존재했던 그것은 잔인하리만치 두동강이 났다. 복수는 끝났다. 죄악은 사라졌다. 두동강이 난 벨트를 보면서, 소년은,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얼굴로 쓰게 속삭인다.

체이스.

 

“안녕, 아버지……. 나의 미련.”

 

그리고, 날 용서해줘.

그것이 「소년」이 선택한 여섯 번째 상실.

 

 

 

 

8.

소년의 작은 바다가 소년의 친구와 똑같은 새빨간 빛으로 물들어갈 무렵.

 

『거기 누가 있어?』

 

누군가의 목소리가.

모두가 떠났다고 생각한 세계에서.

아무도 남지 않았다 생각한 세계에서.

 

『그런 곳에 있으면 안 돼.』

 

목소리와 함께 갑자기 하늘이 부서져 내렸습니다.

단 한 번도 본 적 없었던 눈부신 빛과 푸른 세계가 소년의 눈을 사로잡았을 때.

그 『누군가』는 소년을 붙잡아 자신의 『세계』로 끌어당겼습니다.

새빨간 금붕어.

붉은 바다에 잠긴 그 금붕어만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을 뿐.

 

 

 

 

9.

모든 것이 끝났다.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로이뮤드 108체의 박멸 이후. 주위는 놀랍도록 조용해졌다. 특상과의 모두가 빠른 속도로 안정을 찾아가고 있는 것과 다르게. 소년은 여전히 침체 속에 빠져있었다.

그때 널 잡았어야 했어.

그의 「친구」는, 인간을 지키고 싶다고 했었다. 자신의 누나 키리코가 사랑하는 것들을 지키고 싶다고. 그걸 위해서라면 목숨도 바칠 수 있었던 걸까. 그래. 그런 결심이 있었으니 그런 말도 안 되는 작별을 고한 것일 터다.

네 녀석이 스스로를 희생시키지 못하게 했어야 했어.

소년은 알고 있다. 진짜 악은 로이뮤드가 아니었다. 그걸 진작에 알고 있었음에도 부정해왔다. 왜냐면 그것은 「죄악」이 만들어낸 것이니까. 죄악이 낳은 죄악. 그것은 깨끗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깨끗하고 정당한 것이라 생각하면, 이산의 일도, 수많은 사람들의 일도 모두 부정하게 되기에. 왜 그것이 죄악에 물들어 죄악으로 보였던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던 걸까. 그 죄악이 없었다면, 그 모두는 죄악이 되지 않을 수 있었을 텐데.

인간의 가능성. 가족. 사랑이라는 빛. 친구가 소중해하고 지키고 싶어 했던 그것들의 뒤에는 추악한 악의만이 있었다. 네가 봤던 빛 너머에 그 더러운 것들이 있었어. 넌 인간의 좋은 것들만 보려고 했지만 사실은 아니었던 거야. 네가 거기에 뛰어들길 바라지 않았어. 빛을 위해 그림자에 뛰어들기를 바라지는 않았어, 정말로.

 

 

 

 

10.

진짜 악의는 인간의 내면에 있다. 그 악의의 표출로부터 선량한 시민들을 지키는 것이 경찰의 의무고, 가면라이더의 의무다.

이제는 진짜 매형이 된 신노스케의 말을, 소년이라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알고 있다. 「친구」의 영혼을 찾기 위해 수많은 곳을 여행하면서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수많은 악의. 그 모든 것들이 인간의 추악한 내면에서 비롯된 것. 로이뮤드 역시 그 추악함을 본받아 인간을 해쳤다. 그들을 박멸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그 때문이겠지. 본받은 악의였고 사실은 그럴 의도로 개발된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악의를 자행한 것은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미뤄졌던 누나와 매형의 결혼기념 파티에 참석했던 날. 다시 한 번 터졌던 폭발 사고를 봤을 때도. 그것을 강하게 느꼈다. 그 모든 것. 「죄악」은 오로지 어떤 기계생명체에게만 있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안일함을 깨부수는 그 모든 것. 소년은 생각한다. 체이스. 네가 목숨 바쳐 지키려고 했던 인간들은, 고작 이정도 밖에 되지 않았던 거야. 그래도 괜찮아? 네가 동경했던 그 모든 것들의 뒷면은 사실 이렇게나 추악하다고. 그래도, 그래도 괜찮았던 거야?

인간이 되고 싶어 했던 친구를, 소년은 떠올린다. 감정을 갖고 싶어 했던 것들. 감정을 얻고 기뻐했던 것들. 그것을 잃어버리고 나서, 자신은 인간이 아니니 상관없다고 말하던 것들. 자신의 누나를 좋아하는 것 같다고, 자신에게 고백하던 일들. 너의 의지를 관철하라 말하던 것들. 마치 자신이 온전히 가진 것처럼 기뻐하는 듯 했던, 자신과 누나와 매형을 보던 그 눈빛. 그때부터 이미 인간을 지키기 위해 목숨도 바칠 수 있다고 결심했던 걸까. 감정이 없어 망설임도 없던 자신의 친구는 그렇게. 지키겠다는 일념 하나로 세상을, 자신을 등진 거였나.

그래도 그 악의를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다. 이제는 세상의 악의 따위는 모르고 살아갔으면 하는 조카도 생겼고. 인간의 가능성과, 인간의 선함과, 인간이 이루어낸 것들을 위해 희생한 자신의 친구를 위해서라도. 모른 척 할 수 없다. 의지를 지키기 위한 싸움. 그 신념을 계속해서 이어주기 위한 싸움.

친구의 희생을 헛되게 만들지 않겠다는 일념 하나만이. 소년을 움직이게 했다.

 

 

 

 

11.

소년을 끌어올렸던 건 또 다른 소년.

그는 상처가 남은 소년의 팔을 치료해주었습니다.

 

『많이 아팠겠다.』

 

그 하나의 소리.

마치 마법에 홀린 것처럼 소년은,

자신의 모든 이야기를 그에게 들려주었습니다.

 

『누군가를 위해서 너 자신에게 상처주지 마.』

 

소년의 이야기를 들은 그의 대답.

 

『그건 너무 외롭고, 슬픈 일이잖아.』

 

하지만,

이라고 말하려던 소년의 목소리는.

그 다음의 말에 씻겨 내렸습니다.

그것은 마법.

 

『죄책감 갖지 마.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참 사소하지만, 누구도 소년에게 알려주지 않았던 마법.

 

『괜찮아.』

 

소년이 다시 앞을 바라보았을 때.

반짝이는 푸른색 하늘 아래에 소년을 남겨두고.

그는, 처음부터 없었던 듯 사라져버렸습니다.

 

 

 

 

12.

소년은 이제야 느즈막히, 조금 많이 늦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웃을 수 있다.

그 모든 것들이 자신을 만들었다. 홀로 남매를 키우셨던 어머니. 어린 자신을 지켜주려 노력했던 누나 키리코. 미국에서 자신을 붙잡아준 이산. 자신의 브레이크가 되어주겠다고 말한 매형 신노스케. 어떤 것에서 악의가 생겨나는지 가르쳐준 반노 텐쥬로. 인간보다 더 인간 같았던 친구 체이스. 이런 자신을 멤버로 받아들여주고 인정해준 특상과의 동료들. 모든 사건이 끝난 지금은 병상에서 회복 중에 있는 레이코까지.

자신이 나약하기 때문에 모든 상실을 막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이런 자신을, 미련에 묶여있던 자신을, 상실 너머로 떠나간 이들이 앞으로 나아가라 밀어준 것이었는데. 이제 더는 죄책감 갖지 않아도 되노라고 그렇게 밀어준 것을. 소년은 이제야 깨닫는다. 그들의 의지를 이어나가는 것. 그것이 이제 자신의 책임이 되었음을.

괜찮아.

미소지어준 그들이 있기 때문에. 소년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친구가 남겨준 보물들을 양손에 쥐며, 소년은, 기운차게 웃었다. 그 어느 날. 필요했기 때문에 억지로 연습을 해서 만든 미소가 아닌. 온전한 미소로.

 

 

 

 

13.

죄책감 갖지 마,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괜찮아,

 

마법 같은 말들이 하나의 획으로 묶여서.

 

외로움,

슬픔,

고통,

 

그 위에 올라앉으면 행복으로 바뀌어.

이별도 상실도 아팠지만,

괜찮아.

그 상처도 다 너니까.

 

반짝반짝 빛이 나는 새파란 하늘 아래에서.

소년은 훌쩍, 「어른」이 되었습니다.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