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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그래 보이지만 뜬 눈으로 새웠다 겨우 한두 시간 잠든 적이 몇 번인지 이젠 셀 수 없다. 요즘은 그래도 눈을 감으려고 노력은 했다. 하지만 그런 노력도 그뿐이다. 봐, 오늘도 하나도 못 잤는데 해가 뜨고 있어. 그는 얼굴을 찡그리며 잠 덜 잔 사람처럼 이불을 뒤집어썼다. 아주 조금 어두워졌지만 그 이상은 아니었다. 그러자 그는 아예 얼굴을 베개로 묻어 버렸다. 그러니까, 나 좀 자게 해 달라고……. 한 달은 족히 넘은 것 같다. 도대체 이게 뭐라고 이렇게 날 괴롭혀? 해가 뜨자 겨우 조금씩 잠이 왔다. 그는 다시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손이며 이불 뭉치며 온갖 빛을 막을 수 있는 것들을 눈에 갖다 댔다. 그러자 천천히 잠들었다.

누워 있는데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난 게 한 주 정도, 그 뒤에 눈물이 나지는 않지만 오만 가지 생각이 다 들었던 게 삼 주 정도. 전부 예닐곱 시간을 생산성 없이 누워서 잠도 못 자고 이뤄 낸 기록이었다. 정말 왜 그러는지 그도 잘 몰랐다. 그냥 금방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생각보다 오래 간 것 정도. 예상은 했지만 실제로도 그랬다. 나한테 왜 이러지? 하루 이틀이면 몰라도 한 달이라니.

 

결국 겨우 한 시간 정도 자고 일어난 그는 비틀거리면서 테이블의 의자에 앉았다. 어쨌든 해가 떴으니 하루도 도시도 깨어나기 시작했다. 그의 주변도 예전과 똑같이 돌아갔지만 유난히 그의 시간은 느리게 지나갔다. 무슨 요일이었지? 잠이 사라지니 저절로 시간 요일 날짜 개념도 같이 사라져 버렸다. 그는 작게 한숨 쉬며 달력을 눈으로 훑다가, 며칠인지도 기억해내지 못하고 결국 전화기의 버튼을 눌렀다. 아, 토요일. 토요일 좋지. 예전만큼 돌아다니지 않는 그에게 주말은 어쨌든 집에 박혀 있기 좋은 핑계거리였다. 그러니까, 좋은 피사체가 보이지를 않는단 말이야. 친한 주변 사람들의 말대로 그는 완전히 의욕이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뭐 어떤가, 작가에게는 눈에 들어오는 주제가 하나도 없으면 그게 바로 쉬는 날이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면 이미 한 달을 무급으로 휴가를 보낸 그였다. 이젠 정말 뭐라도 해야 해. 그는 어떻게든 나가 보려고 앉아 있던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지만 쌓일 대로 피곤이 쌓인 그의 몸은 그대로 아까 일어났던 이불로 쓰러지듯 직진했다.

물론 눕는다고 잠이 오는 것은 아니다. 아침에서 낮으로 넘어가려는 해가 쓰러져 있는 그를 창문으로 환하게 비췄다. 그가 이불을 뒤집어썼다.

몸이 피곤해서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고 머리도 이젠 한계까지 돌아가서 지끈지끈했다. 이젠 정말 자지 않으면 큰일이다. 게다가 이렇게 뻗어서 반자의적으로 누워 있으면 별의별 생각이 다 들기도 했다. 사람이 감상적이게 되는 건 새벽이라고 했던가. 그게 잠을 참아서 생기는 감성이라면 그는 해가 반짝하고 비출 때도 새벽 급의 감성을 휘두를 자신이 있었다. 그는 해를 등지고 옆으로 누웠다. 생각해 보면 그가 이렇게 뜬눈으로 사는 것도 같은 이유다. 정말이지 알 수 없다. 이렇게까지 사람이 피폐하게 될 줄 알았다면 애당초 그렇게 굴지도 않았을 것이다. 추억이라고 하기에도 미묘한 기억들이 그의 머릿속에 하나하나 자리를 잡고 앉아 섰다. 그리고 이런 밀물이 시작되면 다시 빠지기를 손 놓고 기다리는 것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예전에는 가끔 이렇게 누워 있으면 청승맞게 눈물이 나는 경우가 있었다. 분명 달빛의 감성이다. 요즘은 시도 때도 없이 그냥 누워만 있으면 그랬다. 시간은 별로 상관이 없었다. 한동안은 눈물이 떨어지는 걸 닦아 보기도 했는데, 이제는 그냥 익숙한 듯이 옆으로 누워서 누운 자리로 떨어지는 물방울을 그냥 손 놓고 구경만 했다. 사실은 이렇게 유난 떠는 것도 다 쓸모 없는 일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차피 이젠 다가갈 수도 없는걸.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고 작게 이야기하기도 했다. 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슬픈 일이었다.

한 달이 지나고 가을에서 겨울의 경계로 넘어오면서 그가, 그가 손에 잠깐 잡았었던 세계도 이전처럼 조금씩 색이 바랬다. 이제 곧 무채색으로 뒤덮일 테지만 그것만으로도 그는 이런 세계를 좋아했다. 그냥 그 속에 평범하게 섞여 들어갈 수 있다는 데에 기뻐했다. 표정으로는 하나도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런 건 오래 지내다 보면 알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렇게 완벽하게 다른 존재를 위해서 뭔가를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겉으로만 괜찮은 척하고 있었던 거지? 자기학대는 그만 하고 싶지만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자책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사실은 어딘가 쓸쓸했을 텐데. 하지만 나한테 진작 말이라도 해 보지, 하고 생각하는 건 그에게 유리한 쪽으로 빙빙 돌린 위선이었다.

 

도대체 언제 잠들었던 걸까. 노력하지 않고 자기에 성공한 건 꽤 오랜만이다. 물론 그래 봤자 푹 잔 건 아니고 서너 시간 얕게 잔 잠이지만 그것만으로도 그는 몸에 없던 힘이 들어가는 걸 느꼈다. 그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서, 아까 앉았던 테이블 앞 의자에 앉았다. 확실히 낮보다는 좀 나은 느낌이다. 어느덧 해는 뉘엿뉘엿 서쪽으로 지고 있었다. 그럼 괜찮게 자고 일어난 기념으로 바깥 공기나 쐴까. 그는 베란다의 창문을 열었다. 초겨울의 서늘한 바람이 집안 구석구석에 스며들었다.

그는 그대로 창문을 열어 둔 채로 대충 옷을 갖춰 입고 집 밖으로 나왔다. 어차피 훔쳐 갈 만한 물건은 아무 것도 없으니 집은 상관이 없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목에는 이미 직업병으로 카메라가 걸려 있었다. 머리카락은 완전히 하늘로 날아가려고 하고 있었지만 어떻게든 후드로 고정시켰다. 백수 같은 느낌인걸. 그런 생각이 들자 그는 없던 웃음이 픽 하고 흘러나왔다.

그는 계속 앞만 보고 걸었다. 어디로 걸어가는지는 전혀 생각하지 않은 채로 그는 계속 걸었다. 후드의 주머니에 뭔가 만져지는 게 있었다. 굳이 꺼내 볼 필요까지는 없는 물건이었다. 이대로만 가면 닳아서 없어지는 건 아닐까, 하고 그는 한층 더 밝은 생각을 했다. 버릴 생각은 없었다. 아니, 애초부터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다. 안고 가야 할 일인 것이다. 힘든 일이 될 거란 것은 그도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젠 그런 각오 정도는 되어 있었다.

자, 그럼 이제 손끝에 닿는 걸 손에 쥐어버리고, 손도 쥐고, 걷는 거다. 지는 노을의 동쪽 끝에 보름달이 걸렸다. 벌서 부지런한 별은 하나 둘 구름과 마지막 남은 햇빛을 들추고 얼굴을 내밀었다. 곧 어두워진다. 해가 산 뒤로 완전히 숨어 버리자 연보랏빛 하늘이 점점 진푸른색으로 변했다. 겨울의 밤이 되어 가는 도시의 공기는 사라진 이에게 웃어줄 수 있는 여유를 그에게 되찾아 주었다. 어떻게 시작했던 한두 걸음은 걸으면 걸을수록 가벼워졌다. 아직 남아 있는 미련도 이제 막 싹트기 시작한 희망도 그는 꼭 쥔 두 손에 가득 담고 계속 걸었다. 닿을 수 있을까,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잘은 모르겠지만 그는 그런 사소한 데 더 이상 신경 안 쓰기로 했다.

얼마나 갔을까, 밤이 깊었고 온 거리를 짐작하지 못할 정도로 멀리 왔다. 하지만 돌아갈 길은 여전히 생각하지 않았다. 이 넓은, 넓고 밝은 도시 안에 그를 데려가 줄 사람 하나 정도는 있다. 그냥 그는 도시의 빛을 뒤로 하고, 남쪽에 뜬 큰 달과 그 주위에서 그까지 온 주위를 감싸는 별만 보고 생각했다.

 

그는 계속해서 걸었다. 걸음이 처음보다 가벼워진 느낌이다.

이렇게 달도 별도 아름다운데 편안히 자고 있을까, 강하고 상냥했던 날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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